
안녕하세요. 밤샘입니다.
제가 데이터 활용 강의를 할 때 꼭 언급하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정조의 깊은 신임 속에서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입니다. 그는 학문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통계학적으로 사고하여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사회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면서 정책 수립의 근거로 활용하고자 했으니까요. 말 그대로 실용을 추구한 능력자였습니다.
18세기 후반, 조선은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낡은 성리학적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학문적 흐름이 꿈틀대던 때, 다산 정약용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어요. 실학의 대가인 정약용은 어떻게 일했을까요?
정약용은 뛰어난 관찰력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들을 살펴보면, 통계학적 사고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이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는 지방관의 백성 수탈을 방지하고 공정한 세금 징수를 위한 지침을 담은 책인데요. 이 책에는 각 고을의 인구, 토지 면적, 곡물 생산량, 세금 등을 파악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행정적인 기록을 넘어, 수치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내리려는 그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바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인 거죠. 당시의 주먹구구식 행정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통치 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조와의 협력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개혁군주 정조와의 각별한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능력입니다. 정조는 국가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백성들의 실질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니 정약용의 실용적인 학문과 정책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었죠. 이러한 정조의 뜻을 헤아려 정약용은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능력을 발휘했는데, 그중 하나가 통계적 접근이 필요한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정조의 신뢰 속에서 통계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거에요.
화성 건설(정조 18년, 1794년)은 정약용의 뛰어난 실용적인 능력과 함께 통계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화성은 단순한 군사적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계획되었기에, 정교한 도시 설계와 효율적인 자원 관리가 필수였어요. 정약용은 화성 건설을 총괄하며, 필요한 인력, 자재의 양, 공사 기간 등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관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거중기와 같은 혁신적인 기기를 개발하여 노동력을 절감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작업 방식을 도출해 내는 그의 통계적 사고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정조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방대한 양의 세곡 운송 현황 보고서를 보고 어려움을 느끼고 정약용에게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고하도록 명했다고 합니다. 정약용은 각 지역별 운송량, 경로, 소요 시간 등을 분석하여 표와 그림으로 보기 쉽게 정리하여 보고했고, 이를 통해 정조는 전국적인 물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고 효율적인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정조는 정약용의 이러한 능력을 깊이 신뢰하고 아꼈습니다.
또한,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현륭원 식목 사업을 마무리한 뒤, 고을마다 심은 나무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신하들이 가져온 관련 공문은 수레 하나가 가득 찰 정도였다고 해요. 정조는 정약용에게 정리하라고 명했죠. 정약용은 정조가 가장 궁금해하는 두 가지(몇 그루? 가장 많이 심은 고을?)에 초점을 맞춰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한 겁니다.
정약용은 다음의 빈 서식을 각 고을 아전들에게 주고 가로엔 나무 종류, 세로엔 날짜를 적게 하고 수치를 적게 했습니다. 마치 스프레드시트의 행과 열에 맞춰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1년 단위로 집계하고 나니, 한 장의 표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화들은 정약용이 숫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분석하여 정보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현대의 데이터 과학자처럼 말이에요.
물론 정약용을 전문적인 통계학자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의 저서와 업적에서 드러나는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 분석, 그리고 이를 정책 결정에 활용하려는 노력은 분명 통계학적 사고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정약용은 모진 정치적 박해를 받고 18년간의 기나긴 유배 생활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그는 학문 연구를 멈추지 않고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유배 생활동안 500여 권의 책을 썼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죠.
정약용의 저서는 과거의 기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통계적 사고를 통해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그의 끊임없는 열정을 볼 수 있어요.
데이터로 세상을 살피려던 노력
우리는 흔히 정약용을 실학자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의 면모를 통계학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은 그의 업적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고자 했던 그의 정신은, 현대 사회의 수많은 ‘가치실현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통찰력을 제시해 줍니다.
개혁군주 정조와의 빛나는 협력을 통해 조선의 발전을 이끌었던 정약용. 그의 삶은 단순한 과거의 위인을 넘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고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현대 리더십의 중요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에 IF는 없지만, 가끔 생각합니다. '정조가 더 오래 살았다면, 영조가 장수하지 않아서 정순왕후를 맞이하지 않았다면, 영조가 사도세자를 몰아세우지 않고 왕위를 제대로 물려주었다면,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씁쓸한 생각 말이에요.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 밤샘연구소 > 공익 가치를 실현한 능력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일한: 민족을 위한 공익적인 삶(독립운동가, 교육가, 기업가, ...) (5) | 2025.04.29 |
---|---|
김장하 선생의 삶을 통해 살펴 본, 교육의 본질 (2) | 2025.04.26 |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 창시자, "This is for everyone" (8) | 2025.04.25 |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1936~2025) 선종 (0) | 2025.04.23 |
석금호(1955~2024) - 한글 글꼴(폰트)에 진심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 ’맑은 고딕’ 개발자 (46) | 2024.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