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밤샘입니다.
저는 자수성가한 분들 중,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고 사회에 공헌하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누군가를 돕기 때문이죠. 부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지원과 관심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 결과라 여기며 권력이나 재산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그런 분들이 빛납니다.
이런 제가 존경하는 분 중의 한 분은 김장하 선생님입니다. 이분의 삶은 교육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커요. 평생을 한약사로 살아가며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고, 그렇게 모은 재산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한 선행은 우리 사회에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교육'이라고 하면 지식 전달이나 기술 습득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물질적인 지원을 넘어 학생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돕는 데 힘썼습니다. 성적보다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한 번 인연을 맺은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지원했습니다. 심지어 갈 곳 없는 학생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게 하며 친자식처럼 보살피기도 했어요. 이는 동정심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육 철학: 교육의 공공성 강조
선생님의 교육 철학은 학교 운영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사립학교 운영자들에게 "학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말라"라고 강조하며, 교육은 돈이 아니라 가치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개인의 풍요보다는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이러한 가치관은 학교 운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교육기관 운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투명성과 공정성, 그리고 학생 중심의 가치관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학교를 미련 없이 국가에 기증함으로써 교육기관은 개인이나 가문의 소유가 아닌 사회 전체의 자산임을 몸소 실천하면서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학교 운영에 자신의 가족을 끌어들이지도 않았고요. 사익을 추구하는 대신, 오롯이 학생들의 성장과 교육 발전에 헌신하는 공익을 추구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러한 행동은 일부 사학재단의 행태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일부 사학재단에서는 설립자의 가족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학교 운영에 깊숙이 관여하는 가족주의적 행태가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운영 방식은 학교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낳기도 합니다. 게다가 학교를 개인의 소유물처럼 여기거나 재산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해요. 교육 본연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 피해는 오롯이 학생들에게 전가되는 거죠.
뿐만 아니라, 일부 사학재단에서는 재정 운영의 불투명성, 채용 비리, 학생들의 등록금 과다 책정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교육기관이 마땅히 가져야 할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간과하고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 아닐까요?
김장하 선생님의 삶은, 교육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학교라는 교육기관은 개인이나 가문의 이익을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공공의 장인가? 등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게 하며, 우리나라 교육계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선생님은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익명으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으며, 자신이 베푼 장학금이나 기부 내역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줬으면 그만이지, 보답을 바랄 이유가 없다"는 말씀처럼, 선생님의 나눔은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어요.
최근 문형배 헌법재판관과의 일화로 김장하 선생님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문 재판관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려 했지만, 선생님의 꾸준한 격려와 지원 덕분에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해요. 문 재판관은 훗날 김 선생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며, "선생님은 제 인생의 나침반이자 등대였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어요. 교육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이 일화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가 역주행하고 있다고 하니,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셨으면 합니다.
형평운동에 대한 공감
다큐멘터리를 보면, 일제강점기 진주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백정들의 신분 해방 운동이 나옵니다. 진주에서는 "저울처럼(衡)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형평사(衡平社)가 창립(1923년)되어 백정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 시작되었는데요. 이 운동이 바로, 형평운동입니다. 갑오개혁 이후 법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어도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었어요.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던 '백정'들의 절박한 외침은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형평운동 기념사업회를 창립하여 회장을 역임했을 만큼, 형평운동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했습니다. 선생님이 평생 동안 보여준 나눔과 헌신은 형평운동이 추구했던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가치와 맞닿아 있어요.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베풀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그의 삶 자체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행동이니까요.
특히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학교는 교육을 통한 사회 변화를 꿈꿨던 선생님의 신념을 보여줍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갔던 선생님에게 교육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차별 없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선생님이 형평운동의 정신을 라는 형태로 실천한 것이겠죠. 문 재판관을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도움으로 꿈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도 형평운동의 정신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요란한 구호나 영웅적인 행위가 아닌, 묵묵히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듬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헌신했으니까요. 결국 선생님은 백정 운동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오랜 차별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우리나라의 교육은 입시 경쟁과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진정한 교육이란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믿고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과 적극적인 행동은, 교육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대해야 하는지, 또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은 비단 교육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장하 선생이 보여준 진정한 '어른'의 모습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우리 사회를 위해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람되지만, 김장하 선생님은 정말 귀여우십니다.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분들은 동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아요. 김장하 선생님만큼은 아니어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해야 겠습니다.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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