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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샘연구소/공익 가치를 실현한 능력자

제주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한 큰 상인, 김만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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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밤샘입니다.

 

대한민국의 유명 관광지인 제주도는 흉년이 잦은 섬이었습니다. 섬이라서 한번 흉년이 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고 해요. 조선 후기, 제주도의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뛰어난 장사 수완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오롯이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쓴 사람, 바로 김만덕입니다.

 


기녀에서 거상으로

김만덕은 소위 말하는 금수저가 아니었습니다. 본래 양인이었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생계가 막막하여 기녀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됐어요.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기녀의 신분에서 벗어났으며, 특유의 굳건함과 뛰어난 상재(商才)를 발휘하여 상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제주도의 특산물을 육지에 판매하고, 육지의 곡물을 제주에 들여오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제주 거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거예요. 여성의 사회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조선 후기 사회에서 김만덕의 성공은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 더 큰 세상을 만들다

1795년(정조 19년), 제주도에는 끔찍한 흉년이 닥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섬 전체가 굶주림에 신음했지만 조정에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고 하니, 백성들의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바로 그때, 김만덕은 자신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풀어 백성들을 구제했습니다. 곡식을 사들이고 죽을 쑤어 굶주린 이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김만덕의 헌신 덕분에 수많은 제주 백성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은 쉽지 않은 행동입니다. 김만덕은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몸소 보여준 것이죠. 

 

가진 자의 무게

김만덕의 이야기는 과거의 미담으로 듣고 넘길 소재가 아닙니다. 경제 규모는 성장했지만, 나눔과 연대의 정신은 예전만 못하다는 씁쓸한 자성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때,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는 모습이 간혹 보이기 때문입니다. 200여 년 전, 흉년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해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털어 나누며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한 김만덕의 숭고한 정신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죠. 

 

당시 제주목사는 김만덕의 행동을 정조에게 알렸고, 정조는 김만덕의 공을 기려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제주도 여인은 제주도를 떠날 수 없었는데, 김만덕은 서울과 금강산 구경이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었어요. 김만덕의 업적과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대 지식인들도 김만덕에게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채제공은 <만덕전>이라는 책을 써서 김만덕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김만덕에 대해 평가를 남겼으니까요.

 

채제공이 지은 <만덕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양극화가 공존하고 있는 현대 사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사익을 추구하는 능력자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공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김만덕의 삶을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려 합니다. 정말이지 곱게 나이 들고 싶어요.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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