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밤샘입니다.
"AI 덕분에 밤샘 안 해도 된다."
"밤샘 작업을 대신해주는 AI"
"기획서 쓰느라 밤샘하는 당신을 위한 템플릿 10종."
"밤샘 야근은 옛말, 생성형 AI가 제안하는 칼퇴의 기술."
"아직도 엑셀 데이터 맞추느라 밤샘하십니까? AI로 3초 만에 끝내세요."
요즘 들어 이런 말을 자주 접합니다. AI 발전이나 업무 생산성 혁신을 강조할 때, '밤샘'이라는 단어는 주로 '과거의 비효율', '야근', '피로', '구시대 노동 방식'의 상징으로 자주 쓰여요. 특히, 직장인의 공감을 사야 하는 마케팅 문구나 AI 및 업무 자동화(RPA) 솔루션 등의 기술 홍보 문구에서 이런 부정적인 뉘앙스가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저는 '밤샘'이라는 단어가 없애야 할 것, 극복해야 할 것,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쓰이는 걸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어요. '밤샘'은 저의 소중한 부캐니까요.

나의 이름은 '밤샘'
코로나 시기였던 2020학년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학생 복습용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제 본명은 '유리'입니다. 교육계에서 직장 생활할 때 항상 '율샘'으로 불렸기 때문에 '율샘'을 고려했으나, 유튜브에 '율샘'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본명과 연결된 새 이름을 고민하면서 '율(률)'이라는 음을 가진 한자를 찾다가, '밤 률(栗)'을 선택했고 그때부터 '밤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밤샘'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어요.
첫째, 열매 밤(栗) - 작지만 단단하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둘째, 샘(선생님) - 교육계에서 늘 불리던 '샘(선생님)'의 흔적을 간직하고 싶어서
셋째, 밤을 새운다 - 밤에서 새벽을 지나 아침이 오는 고요한 시간대를 좋아해서
중의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저에게 딱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밤샘'을 없앤다고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여러 말들이 틀린 건 아닙니다. AI는 실제로 수많은 야간 작업을 줄여주고 있으니까요. 반복적인 문서 작업, 데이터 정리, 자료 검색… 예전엔 밤을 새워야 했던 일들이 몇 분 안에 처리되기도 하죠.
'밤샘'이란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발상을 해봤어요. 오히려 이 흐름으로 '친절한 밤샘'이라는 브랜드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디지털 정보 격차는 AI 시대에도, 아니 AI 시대이기 때문에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AI 덕분에 퇴근을 일찍 하고, 누군가는 AI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여전히 밤을 새워요. 저는 그 간격을 줄이고 싶어서 강의를 하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소리, 다른 의미
세상이 말하는 '밤샘'과 제 '밤샘'은 같은 소리지만 담긴 의미가 다릅니다.
세상이 없애고 싶어 하는 밤샘의 의미
-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시간, 끝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어서 억지로 이어가는 야근
- 비효율의 상징, 사라져야 할 것
이름에 담은 밤샘의 의미
- 더 잘 가르치고 싶어서 배우고, 더 쉽게 설명하고 싶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깊이 파고드는 즐거운 몰입의 시간
억지로 새는 밤과, 좋아서 새는 밤은 같은 밤일 수 없습니다. AI가 전자의 밤샘을 없애주는 동안, 저는 후자의 밤샘을 계속해 나가려 합니다.

지속가능한 밤샘연구소
'밤샘연구소'라는 이름은 거창한 연구를 뜻하지 않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누구나 자기 관심 분야를 깊숙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계속 공부하면서 배움을 나누고 싶다는 제 오랜 다짐을 담았죠.
AI 시대에 '밤샘'이라는 단어가 자꾸 부정적인 맥락으로 소비되는 걸 보면서 결심했어요. 이 이름의 진짜 가치와 따뜻한 의미는 쓰는 사람인 제가 더 분명하게 채워야나가야겠다고 말이죠. 이름의 뜻은 쓰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고백하자면, 그동안 밤샘연구소장으로서의 활동은 꽤 소극적이었습니다. 강의하는 친절한 밤샘에는 집중했지만 밤샘연구소장으로서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은 늘 뒷전이었거든요. 언젠가 해야지, 하면서 미뤄온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습니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해줄수록, 오히려 사람이 직접 탐구하고 이해하는 '맥락의 힘'은 더 중요해질 겁니다. 도구를 쓸 줄 아는 것과 왜 이 도구를 써야 하는지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니, 이 부분에 집중하려 해요.
질질 끌려가는 비효율의 밤샘은 AI에게 맡기고, 앞으로는 밤샘연구소장답게, 배운 것을 기록하고 친절하게 나누는 일을 부지런히 해보려 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천천히, 꾸준히, 그리고 친절하게... 앞으로도 그렇게 밤샘연구소를 채워나가겠습니다.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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